“촬영은 촬영감독이 하고, 연기는 배우가 하고, 감독은 선택하는 사람이야. 그런데 선택에는 정답도 없고. 그래서 어렵지.”
“인생처럼요?”
박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.
“그 수많은 사람들이 왜 감독의 말을 듣겠어. 남들보다 잘 선택해야 돼. 선택의 프로가 되어야 해.”
내 얼굴 한쪽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그날의 햇살이 추운 날씨에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. 나는 그 와중에도 촬영하기 참 좋은 볕이라고 생각했다.
“인생을 잘 살면 영화도 잘 만들 수 있을까요? 잘 산다는 게 어떤걸까요?”
“계속 고민해야지.”
선문답같은 대화가 이어졌고, 선택의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에 남았다.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.
“ 잘 살아야겠네요, 그럼.”
“그럼.”
-p34
삶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오케이를 외친 순간들이 드물게 있었다. 무언가가 좋다는 감정,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. 사람들은 그래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.
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, 불확실한 생에 확신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어서.
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고백하는 것이었다.
-p198
만약 그때 데뷔를 했다면, 그때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,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기회에 가까이 가서 더 괴로웠던 날들. 자신의 선택으로 사라진 ‘만약’의 이야기들. 나는 밤마다 작업실에서 편집기의 조그셔틀을 거꾸로 돌려보는 고태경을 떠올렸다.
“어떤 사람들은 말이야 과거를 돌아보거나 직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. 현재만, 앞만 보고 가야해. 뒤를 돌아보고 후회에 젖어 있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사람에게나 허용된거야”
-p219
이제는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. 인생이 ‘원 찬스’가 아니고 내가 다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.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.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와 연출 노트를 열심히 쓰면서, 기회가 왔을 때, “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”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.
그리고 언젠가 마침내 극장으로, 그 어두컴컴한 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. 신기루를 좇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, 완성된 영화가 빛이 되어 먼지를 뚫고 흰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환상의 그림을 만들어낸다. 그렇게 우리가 보낸 세월이 빛이 된다.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.
-p255
GV 빌런 고태경 - 정대건
현재 삶이 NG라고 생각하는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이야기이다.
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, 하물며 한 인생을 살아가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
나도 만약의 늪에 빠져 살았던 때가 있었다.
그때 만약 다른 학교에 갔다면, 그때 그냥 그 회사에 입사할걸
그때 그 말을 하지 말걸, 그때 그 기회를 잡았다면…
사실 진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거다.
그 때에는 그게 내 최선이었으니까.
후회는 나의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다.
왜냐면 그 과거의 내 선택들로 인해 현재의 내가 되었으니까.
그게 지나고 지나 현재의 나를 좋아하게 되면 후회는 사라진다.
모두에게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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